손자 (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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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자(孫資)는 조위의 관료로, 중서령을 역임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조조의 초빙을 거절하고 관직에 나아가 상서랑을 지냈다. 조비 시대에 비서랑을 시작으로 중서령까지 올랐으며, 조예를 보좌하고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다. 조방 시대에는 위장군을 역임하고 시중과 중서령을 다시 맡았으며, 정후의 시호를 받았다. 그의 손자는 손초이고, 현손은 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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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조위) | |
---|---|
인물 정보 | |
이름 | 손자 |
한자 표기 | 孫資 |
로마자 표기 | Son Ja |
자 | 언룡 |
한자 자 | 彦龍 |
로마자 자 | Eonryong |
출생 | 생년 미상 |
출신지 | 병주태원군중도현 |
사망 | 가평 3년 8월 27일 (251년9월 29일) |
사망지 | 낙양 |
관직 및 작위 | |
주요 관직 | 시중 중서령 표기장군 |
작위 | 중도후 |
시호 | 정후 |
섬긴 세력 | |
주군 | 조조 조비 조예 조방 |
2. 가계
손자의 손자는 손초이며, 현손은 손성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삼국지』유방전 주 인용 『손자별전』)
3. 생애
손자는 현령을 역임하고, 참승상군사가 되었다. 위나라가 건국되자 유방과 함께 비서랑을 맡았다. 조비(문제)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각각 좌승·우승이 되었고, 황초 연간 초기에 비서가 중서로 개칭되자, 유방이 중서감, 손자가 중서령이 되어 각각 급사중을 겸임했다. 또한 손자는 관중후, 유방도 관내후를 받았으며, 기밀을 취급했다.
황초 3년(222년)에 손자는 관내후가 되었다. 조예(명제)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산기상시를 더해 낙양정후가 되었다. 태화 연간 말, 오가 요동의 공손연을 유인하기 위해 장수를 파견했을 때, 손자는 다른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요격을 주장하여 성공했기 때문에, 그 공적으로 좌향후가 되었다. 청룡 연간 초, 시중·광록대부가 더해졌고, 경초 2년(238년)에 요동이 평정되자, 참모로서의 공적으로 작위를 받아 중도후가 되었다.
조예는 임종 시,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고, 하후헌·조상·조조·진랑과 함께 조방을 보좌하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하후헌·조조 등은 유방·손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방·손자는 조예에게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고, 방침을 변경시켰다. 이 때문에 조우·하후헌·조조·진랑 등이 파면되고, 사마의와 조상이 조방을 보좌하게 되었다.
조방(제왕)이 즉위하자 유방·손자 모두 가증되었고, 자식에게도 작위나 관위가 주어졌다. 정시 원년(240년)에는 우광록대부·의동삼사가 되었고, 같은 해 6년(245년)에는 중서령인 채로 위장군이 되었다. 다음 해, 지위를 물러났지만, 조상 등이 살해되자 복귀하여, 시중·중서령이 되었다. 가평 2년(250년), 표기장군에 임명되었지만, 다음 해 사망했다. '''정후'''로 시호되었고, 작위는 아들 손홍이 이었다.
손홍의 아들이 "침류수석"으로 유명한 손초이며, 손초의 손자가 『삼국지』의 주에 인용된 『위씨춘추』 등의 저술로 유명한 손성이다.
3. 1. 후한 말, 조조 시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3. 2. 조비 시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그를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손자는 현령을 역임하고, 참승상군사가 되었다. 위나라가 건국되자 유방과 함께 비서랑을 맡았다. 조비(문제)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각각 좌승·우승이 되었고, 황초 연간 초기에 비서가 중서로 개칭되자, 유방이 중서감, 손자가 중서령이 되어 각각 급사중을 겸임했다. 또한 손자는 관중후, 유방도 관내후를 받았으며, 기밀을 취급했다.
황초 3년(222년)에 손자는 관내후가 되었다.
3. 3. 조예 시대
조예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산기상시를 더해 낙양정후가 되었다. 태화 연간 말, 오가 요동의 공손연을 유인하기 위해 장수를 파견했을 때, 손자는 다른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요격을 주장하여 성공했기 때문에, 그 공적으로 좌향후가 되었다. 청룡 연간 초, 시중·광록대부가 더해졌고, 경초 2년(238년)에 요동이 평정되자, 참모로서의 공적으로 작위를 받아 중도후가 되었다.
조예는 임종 시,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고, 하후헌·조상·조조·진랑과 함께 조방을 보좌하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하후헌·조조 등은 유방·손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방·손자는 조예에게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고, 방침을 변경시켰다. 이 때문에 조우·하후헌·조조·진랑 등이 파면되고, 사마의와 조상이 조방을 보좌하게 되었다.
3. 4. 조방 시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그를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조예는 임종 시,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고, 하후헌, 조상, 조조, 진랑과 함께 조방을 보좌하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하후헌·조조 등은 유방·손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방·손자는 조예에게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고, 방침을 변경시켰다. 이 때문에 조우·하후헌·조조·진랑 등이 파면되고, 사마의와 조상이 조방을 보좌하게 되었다.
조방(제왕)이 즉위하자 유방·손자 모두 가증되었고, 자식에게도 작위나 관위가 주어졌다. 정시 원년(240년)에는 우광록대부·의동삼사가 되었고, 같은 해 6년(245년)에는 중서령인 채로 위장군이 되었다. 다음 해, 지위를 물러났지만, 조상 등이 살해되자 복귀하여, 시중·중서령이 되었다. 가평 2년(250년), 표기장군에 임명되었지만, 다음 해 사망했다. '''정후'''로 시호되었고, 작위는 아들 손홍이 이었다.
4. 친족 관계
- 손초 - 손자의 손자
- 손성 - 손자의 현손
5. 평가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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